여기서는 화학과의 학사 일정이 대략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1년차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것들만 골라 보겠습니다.
- 과 오리엔테이션 때 받는 소책자에 잘 나와있지만 1년차 때는 주로 수업을 듣게 됩니다. 들어야 하는 과목은 세부 전공 (유기, 무기, 물리, 분석, 생유기, 생물리)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core (필수) 3개와 elective (선택) 3개를 들어야 합니다. 즉, 한 학기당 평균 두 개씩의 과목을 수강하게 되죠. 물론 elective는 반드시 graduate level이어야 합니다. 학수번호가 2로 시작하는 수업들이 대학원 레벨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할 경우 elective는 얼마든지 3개보다 더 수강할 수 있지만 academic advisor나 나중에 배정될 자신의 지도 교수와 미리 상담해야 할 겁니다.
- 그 외에 1년차 때 들어야 하는 수업이 몇 개 있습니다 (모두 S/U grade).
- 세미나
퀄 (박사 자격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매학기 필수로 수강해야 합니다. 그냥 매주 화, 목요일에 있는 세미나에 참석만 하면 됩니다. 가끔 그 곳에 있는 sign-up sheet에 싸인만 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
- Intro to Chem Res (Che293)
첫 학기에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데, 이것은 학생들의 지도 교수 결정을 돕기 위한 수업으로 매주 수요일 7시 반(변경될 수 있음)부터 하루에 교수 5명이 한 명당 20분간 자신의 연구 주제를 간단히 발표하는 겁니다. 그리고 발표가 모두 끝난 후에는 바로 옆 방에서 그 교수들과 학생들이 다과를 즐기며 만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 수업을 패스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완료해야 합니다.
- 1. 모든 수업에 참석할 것. 수업 후 뒷풀이(?)에는 꼭 참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2. Form A를 작성할 것. Form A에는 교수 다섯 명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즉, 최소 다섯 명의 교수와 만나서 상담했다는 증명서인 셈입니다. 그 중 두 명은 조교수로 하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이 써 있는데 큰 상관은 없습니다.
- 3. Form B를 작성할 것. Form B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1~3지망까지 자신이 원하는 교수의 이름을 적어서 냅니다. 주로 1지망에 적은 교수가 자신의 지도 교수가 되지만 어떤 이유 (주로 학생이 너무 몰려서 더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로 인해 그 교수에게 accept를 받지 못했다면 2지망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12월 중순에서 말 쯤에는 자신의 지도 교수가 완전히 정해집니다. 지도 교수 결정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 대충 다섯 명 싸인 받고 하지 마시고 여러 명과 깊게 만나서 이야기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Davis에 오기 전부터 확실히 마음을 정하고 오신 분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요.
- Careers in Chemistry (Che295)
매주 금요일 2시-4시까지 현재 화학과 졸업 후 특정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세미나를 듣는 겁니다. 이 수업은 학부생들도 같이 수강합니다. 세미나 전반부 1시간은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하며 후반부 1시간은 자신이 이 직업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 발표하는데, 대부분 학생들은 이 수업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솔직히 들으면서 많이 지겨웠었고요. 수업을 패스하기 위해서는
- 1. 모든 수업에 참석할 것. 1부를 듣고 2부 때 그냥 가 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가끔 sign-up sheet를 2부 때 돌리는 경우도 있어서 운 나쁘면 걸립니다. ^^
- 2. Small group meeting에 1회 참석할 것. 이게 뭔가 하면 3~4명 단위로 speaker와 작은 방에서 직접 만나서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마 수업을 시작할 때 원하는 small group meeting (줄여서 SMG라고 함) 시간에 sign을 하라고 할 겁니다. 어차피 초반에는 어떤 speaker가 올 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아무 자리에 sign 하시고 정해진 시간에 참석만 하면 됩니다.
- Che294
이건 2010년 경부터 필수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1, 2학년 학생들은 무조건 등록해야 합니다. 역시 별건 아니고 매주 금요일에 third year seminar에 참석하는 겁니다. 원래 third year seminar는 오픈 세미나 식으로 희망자만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왜 1, 2학년 학생들은 무조건 참석하도록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사람이 너무 없었나? ^^). 솔직히 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면 모를까 이미 자기 랩과 자기 연구 프로젝트를 잡은 학생들까지 무조건 들으라는 것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별 수 있나요? ^^ 이 얘기는 우리들 역시 나중에 3학년이 되었을 때 모든 1, 2학년 앞에서 세미나를 해야 한다는 뜻이 되겠네요.
- Teaching Chemistry (Che390)
이 2학점짜리 과목은 TA를 하는 사람들이 등록하는 과목입니다. 이것 역시 TA를 하실 경우 매번 등록하셔야 하며, 보통 어떤 과목을 하는가에 따라 CRN 코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과사로부터 CRN 번호를 받아 등록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수업에 참석하고 두 개의 전공 수업 (그리고 영어 수업까지)을 들으며 TA까지 하시려면 첫 학기에 정신 없이 바쁘실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 학기에는 지도 교수가 배정되지 않기 때문에 랩에 출근할 필요는 없다는 것. 임시로 자신의 office가 배정되기는 하지만 그 office의 교수가 자신의 지도 교수가 된다는 법은 전혀 없으니 사용 하고 안하고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실제로 저는 제 임시 오피스는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임시 오피스가 방이 아니라 실험실 귀퉁이 부분이더라고요. ^^
12월 중순에 첫 쿼터가 끝나고 3주간의 방학 후 두 번째 쿼터 (Winter)는 1월 초에 시작됩니다. 역시 수업 두 개에 세미나를 수강하는 것은 똑같지만 위의 Che293과 Che295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는 지도 교수가 정해진 후이기 때문에 랩에도 출근하셔야 할 겁니다. 보통 수업 듣고 TA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자기 project를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자신이 원한다면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처절하게 바쁠 각오를 하셔야 하죠. 제가 해 보니 별로 추천할 만 하지는 않습니다. ^^; 바쁜 것도 바쁜 것이지만 여러 수업과 TA일 때문에 연구에 집중하기가 어렵더군요.
Winter 쿼터는 3월 중순에 끝나고 방학은 딱 1주일입니다. 3월 말에 바로 봄 쿼터 시작입니다. 마찬가지로 전공 수업 두 개 들어야 하고요. 될 수 있으면 1년차에 수업 6개를 모두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Spring 쿼터는 6월 중순에 끝나고 Summer session이 시작됩니다. Summer session에는 대학원 수업이 없기 때문에 보통 이 때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랩에서 Summer 동안에는 RA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여름에도 TA를 해야 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여름 TA 관련해서 아주 안 좋은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어디서 온지 모를 괴팍한 성격의 담당 강사 때문에...
TA를 하면서 받는 돈은 세금을 제하고 나면 매달 1600불 정도 됩니다. 첫 월급은 11월 1일에 과사에서 수표로 받게 되는데 첫 월급만 1800불 정도로 높더군요. 그 이후에는 자신의 계좌로 매달 초 송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을과 겨울 학기 사이에 3주의 방학이 있지만 이 기간에도 돈은 계속 들어오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TA를 하지 않는 Summer session 동안에는 지도 교수가 RA를 주고요 (단, summer 때는 월급 액수가 1500불 정도로 줄어들기도 하고 반대로 2400불 정도까지 늘어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돈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1600불이면 한 달 동안 충분히 쓰고도 남는 돈이니까요. 정식으로 RA를 받기 시작하는 시점은 랩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2년차까지는 TA를 하고 3년차 때부터 RA를 주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난 왜 박사과정 5년차가 된 이 시점까지 TA를 하고 있냐고.
Qualifying exam은 줄여서 퀄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박사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 중 하나로서 committee 다섯 명 앞에서 자신의 연구 계획을 발표하는 oral presentation입니다. 하지만 말이 연구 계획 발표이지 전공과 관련된 지식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모두 답해야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압박이 상당합니다. 제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수들은 학생 한 명을 집중적으로 grill 한다고 합니다. 퀄은 한 번에 패스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조건부 패스 (예를 들면 패스는 패스이지만 어떤 수업을 들어라고 하는 등)를 시켜주기도 하고, 드물기는 하지만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퀄을 패스하면 그 때부터 non-resident tuition (NRT)가 면제됩니다. 퀄을 치기 전까지는 그걸 전부 다 과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죠. 퀄은 보통 2년차의 Winter 혹은 Spring 때 치게 되고 퀄을 칠 때가 되면 지도 교수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준비를 하시게 될겁니다. 가끔 리뷰를 위해 자신이 과거에 들었던 수업을 다시 청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Winter에 친다고 보시면 됩니다. International들은 NRT 때문에 퀄을 빨리 치도록 하더군요.
박사 3년차 때는 third year seminar라는 것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위의 퀄보다는 훨씬 압박이 덜하지만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해 여러 교수들 및 다른 대학원생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것으로 역시 그룹 내에서 리허설 등을 거치고 하게 됩니다. 이것을 끝낸다면 한숨 돌린다......가 아니라 박사 논문을 위해 자신의 연구에만 집중하셔야겠죠? 의외로 한국 대학원과 달리 여기서는 박사 논문 디펜스를 하지 않습니다. 이걸 2년차의 퀄 때 미리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2년차 때의 퀄을 가장 큰 고비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졸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년입니다. 한국의 대학원과 달리 일부러 학생을 졸업 시키지 않고 붙잡아 두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같은 랩에서 포닥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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